론리 더블 트랩

THIS IS LOVE

열린 현관 틈으로 보았다. 도망간 애가 흘리고 간 누덕누덕 엉겨있는 후덥지근함. 한쪽 눈을 가리고 보기에도 부족함 없는 협소한 복도 바닥에 깔린 거리의 잡음. 벽면을 붙잡았다. 어쩔 수 없었다. 뭐라도 붙잡지 않으면 주저앉게 될 것 같았다. 머리가 아프다. 토할 것 같아. 숨 막혀. 회복은 되나? 이게, 회복할 수는 있는 상태인가? 쇠망치로 머리를 깨부숴도...

둘이 진짜 친한가 봐. 유빈의 어조는 평이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송곳니 같은 게 돋아나 있었다. 말을 주고받을 때면 그 날카로운 부분이 혀에 콱 박혀왔다. 따끔따끔. 입병이 늘 그렇듯 겉으로는 티 나지 않았지만 속은 곧장 뒤집어졌다. <저런 걸> 팔 년이나 짝사랑했다니. 순영은 턱을 괸 채 원우를 바라봤다. 전원우에게 짝사랑 같은 걸 가르쳐 준 사...

꾹 내리누르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속눈썹 사이에 낀 정적 또한 후드득 떨어졌다. <뭐야. 할 수 있네.> 빳빳한 눈으로 마주 보고 있던 순영이 이내 입꼬리를 죽 올려 웃었다. 모순 같다. 입매가 올라가는 순간 내려간 눈매. 안 웃기도 뭐 해서, 원우는 입가에 마취를 놓은 사람처럼 꿈틀꿈틀 입술만 움직였다. 웃음이라 치기엔 겸연쩍은 원우의...

비에 젖은 전원우를 본다. 마음을 둘로 쪼갤 수 있을 것만 같다. 론리 더블 트랩 룸미러에 박힌 두 눈이 흘끔흘끔 족적을 남겨온다. 순영은 그게 거슬렸다. 가는 방향이 확실한 눈길을 뒤따라 추월해 그대로 후진해서 쾅 박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원우의 무릎 위로 던졌다. 내리 창가만 바라보던 시선이 아래 한 번 옆 한 번 둥글게 움직였다...

어떤 기억은 휘발되지 않고 평생을 맴돈다. 한때는 과거였고, 현재에 기생하며, 미래를 구속하는 어떤 순간들. 한 사람의 시간 체계를 철저히 무너뜨려가며 자리 잡은 어떤 장면들. 회상은 쉽고, 감상은 버겁다. 기억을 뒤지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 시절의 자신과 마주 보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날것의 감정을 입에 문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중학교...

What is Love?

애정에 관한 역사는 호흡이 짧았다. 마치 전체관람가 전대물처럼. 명맥은 이어가되 출연진은 자주 바뀌었다. 주인공은 언제나 빨간색 옷을 입었지만, 그가 지켜야 하는 히로인의 헤어스타일은 포니테일이었다가 긴 생머리였다가 단발이었다가 매번 달랐다. 또, 누군가 불쑥 그 역사를 헤집어본다고 한들 대낮에 얼굴을 붉히고 몰래 밤중에 불 켜고 돌연 마음이 긁히고 그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