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앞에 두고 핸드폰 하는 거 그거 진짜 버릇없는 거다. 지 감자튀김 다 처먹어놓고 원우의 감자튀김을 하나씩 가져가던 상연이 대놓고 힐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우는 식사에 진작 흥미를 잃고 나이트 시프트 모드 켠 액정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입학 이래 처음으로 봄 축제와 관련된 정보를 싹 다 모으고 있는데, 마땅히 쓸 만한 게 없었다. 원우가 원하는 건 ...
어떤 의미에서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흔치 않은 경험이 닥칠 때 그런 생각을 한다. “강민아.” 운명은 믿지 않는다. 인연도 떨떠름하다. 예상치 못한 재회는 늘 불편했고, 계획된 만남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우연, 인연, 운명. 매체가 시청률을 위해 표방하는 상투적 단어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운명이 된다는, 로맨틱...
새하얀 스웨터를 마지막으로 올려 꾹 내리누른 박스가 터졌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테이프는 탄산 같은 소릴 내며 찢어졌고, 군데군데 뜯긴 틈으로 굵은 보풀이 보였다. 한 겨울에나 입을 법한 두꺼운 스웨터의 실이 테이프 곳곳에 눈송이처럼 붙어 있었다. 이럴까 봐 몇 번 더 테이핑 하려고 했던 건데. 먼발치 바닥에서 주워 온 박스테이프를 손에 쥔 원우가 허망한 ...
“역할 분담하자고 하셨죠?” 노트북에 들어온 빨간 불을 끈질기게 노려봤다. 보기 싫어 꺼버린다면 배터리가 나갈 것이고, 이대로 놔둔다면 과열될 것이다. 방전과 오버히트. 어느 쪽도 내키지 않은 듯 좁혀진 미간을 향해 핑 질문이 날아와 꽂혔다. 개강 이래 제대로 발 뻗고 잠든 적이 없었다. 전원우는 붉게 충혈된 두 눈 그리고 직선처럼 쭉 뻗은 시선을 돌렸다....
사라지는 기억은 없다. 찾지 못할 뿐이다. 심해 저편. 태양 가까이. 혹은, 영원한 시간 안에서. 아카야 공연 전날, 주역 무용수가 교체됐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팔월, 도쿄도 도시마구 니시이케부쿠로에 위치한 도쿄예술극장은 대한현대무용단의 현대무용극 <아이온>을 선보인다.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가기 전부터 전체 회차 매진이라는 폭발적인 관심...
도망간 목소리가 두고 간 고백. 직선으로 헤엄쳐 온 또렷한 애정들이 온몸에 철썩 달라붙어있었다. 까딱하면 이미 넘어진 곳을 또 무너뜨릴 정도로. 순정이 붙은 멜로디는 무서웠다. 쉽게 입에 붙었으나 잘 잊히지는 않았다. 사랑 노래는 숨이 찼다. 괜히 강렬한 연애 시의 청자가 된 것 같아 식은땀이 났으니까. 매끄러운 바닥을 간신히 짚은 손바닥과 납작 들러붙은 ...
콜라주처럼 오려 붙인 듯한 양감이 다른 친목 현장이었다. 살아온 결이 다르고, 밟아온 명암이 다른 인물들이 모여 시선을 나눴다. 원형을 뭉그러뜨리며 얼기설기 붙어있던 무리에 대뜸 발을 들이민 쪽은 순영이었으나, 이방인 같은 낌새라곤 조금도 없었다. 공통점이라곤 오로지 같은 대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것과 성별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순영은 완벽한 타인의 얼...
꿈을 꿨다. 창조주의 공들인 손끝에서 완성된 듯 무결하고도 황홀한 꿈. 대개 무의식 속 이미지들이 그렇듯, 사람도 사물도 오래된 화면에 빗금이 그어진 양 흐릿했다. 무색무취의 길을 걷다 원우는 고개를 내렸다. 꼼꼼히 묶인 신발 끈이 서로를 놓칠새라 꽉 물고 있었다. 발아래의 바닥은 솜사탕처럼 물러서, 얼른 걷지 않으면 무너지기 십상이었다. 걷다 보니 뛰었고...
키스는 섹스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진위를 가릴 경험이 없어, 각주를 달고 말고 할 것도 없던 말이 목으로, 폐로, 흘러들어왔다. 눈을 감은 채로 서툴게 혀를 움직였다. 순영은 키스를 잘 했다. 그 속도를 따라가기 급급해 원우는 자꾸만 숨이 가빴다. 허공을 쥐고 있던 손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순영의 어깨를 미약하게 붙들었을 때, 아주 잠깐 고개가 떨어졌다. ...
요란한 불빛을 내며 달려가는 선거 유세 트럭처럼 제목 모를 노랫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베이스로 깔린 악기 소리가 통기타였는지, 건반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합창이 섞인 화음에 불과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창밖으론 내내 프라이팬 위에 올려 뒤섞은 잔반들처럼 각기 다른 소리들이 울렸다. 점점 달궈져 까맣게 익어가는. 오래된 현관문 밑으로...
진동벨이 울렸다. 순영이 먼저 일어섰다. 시리도록 파란 옷자락이 펄럭이는 동안, 원우는 줄곧 테이블 위에 고정된 메뉴판을 읽었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카페라떼, 바닐라라떼, 카페모카,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었다. 커피 종류는 뭐 이리 쓸데없이 많을까. 사람들은 대개 이 명칭들을 다 외우고 있는 걸까. 여기 주인은 이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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